2019년 여름호

신뢰사회와 블록체인 (Trust Society and Blockchain)

금창섭(빅픽처랩 대표)

노스이스턴 대학교 심리학 교수이자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데스테노(David Desteno)는 최근 그의 저서에서 “타인을 믿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믿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 누구를 어떻게 신뢰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든 것이 바뀐다”라고 주장했다[1]. 20년이상 전문 분야에서 활동해온 필자의 경험을 반추하여도 ‘인생에서 누구를 얼마나 믿을지’는 삶의 매우 핵심적인 질문으로 여겨진다.   

마이클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는 유인원 중에서 사피엔스만이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가 ‘타인의 도움 없이는 혼자 존재할 수 없었던 미약함에서 탄생했다’고 적시한다[2]. 즉, 인류는 나약한 자신을 보호하고 생존을 위해 타인과의 협력을 지속해 왔고 이러한 협력을 통해 오늘날의 문명을 이룩했다. 신뢰는 배신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믿는 것이다. 타인과의 협력에서 누구를 신뢰하고 신뢰하지 않는지에 따라 매우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신뢰 대상을 잘 선택하면 큰 경제적 이익과 관계에 의한 행복감을 얻고, 반대의 경우에는 막대한 금전적 손실과 더불어 정신적 피해까지 입을 수 있다.  내포된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 사회에서 여전히 신뢰를 하게 되는 이유는 평균적으로는 신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잠재적 혜택이 잠재적 손실보다 크다는 사실을 인간이 오랜 경험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이다. 배신의 염려가 적어 배신 예방에 들여야 할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는 상호 협력이 용이한 사회가 신뢰사회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어떤 나라의 경쟁력은 그 나라가 갖고 있는 신뢰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3]. 또한 그는 한 나라의 신뢰 수준이 낮은 국가는 앞으로 큰 발전이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그러한 국가의 미래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본 소고에서 필자는 소프트웨어 기술인 블록체인이 어떻게 저신뢰사회를 보다 높은 차원의 신뢰가 가능한 고신뢰사회로 전환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 제안된 비트코인 백서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4]. 이 기술은 네트워크 구성원들 간의 안전하고 투명한 장부 공유를 통해 합의된 신뢰를 만들고 중개 기관의 개입 없이 거래 당사자들 간의 직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분산 데이터 관리 소프트웨어 기술이다. 상호 신뢰할 수 없는 인터넷 공간에서 신뢰할 수 있는 트랜잭션 기록을 분산 복제하여 저장하고 참여자들이 함께 검증할 수 있게 함으로써 블록체인은 ‘신뢰 머신(trust machine)’으로 불리게 되었다. 블록체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통해 거래 기록에 관한 데이터 신뢰를 확보한다[4].

  • 투명성. 블록체인에 참여한 구성원 모두에게 데이터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구성원들은 데이터를 독자적으로 검증하고 기록하고 보관할 수 있어 투명성이 확보된다.
  • 탈 중앙화. 특정한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다는 특별한 권한을 인정하지 않는다. 불특정 다수의 합의에 의해 정보가 갱신되고 조작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는 방식으로 제3의 보증기관이 필요하지 않다.
  • 누적된 신뢰 증명.  시간이 지날수록 조작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도 블록체인의 주요 특징이다. 중요한 거래에 대한 불가역적인 기록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블랙박스와 같이 거래 이후 문제의 근원을 파악할 수 있다.
  • 스마트 계약. 믿을 수 있는 분산 장부와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에 의해 자동으로 집행되는 계약을 통해 계약 신뢰도를 높인다. 계약과 이행이 인간의 판단없이 자동적으로 이행되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같이 블록체인 기술의 핵심은 ‘위변조 불가능한 기록을 원장(ledger)에 보관하고 이 기록을 참여자가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Money over IP(Internet Protocol)’로 대표되는 암호화폐(crypto currency) 분야에서 그 효능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암호화폐에서 확인된 데이터 신뢰는 익명의 상대방 간의 거래 기록에 대한 신뢰성(trustworthiness)을 보장한 것에 불과하다. 즉, 데이터 신뢰가 신뢰사회에 요구되는 사람과 사람의 협력에 관한 신뢰의 문제를 달성해 주는 것은 아니다.  협력을 위한 신뢰는 신원(Identity) 확인부터 시작해야 한다. 신원을 좀 더 세분화해보면 인증(Authentication)과 자격(Qualification)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본인 인증은 현재 공인인증서 등으로 해결되지만 중앙의 인증기관이 보유한 개인정보 보호 이슈와 해킹 문제가 크다. 최근,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블록체인 기반의 자기주권 신원 기술(SSID, Self-Sovereign Identity)유력하게 대두하고 있다.  SSID 기술은 중앙 기관에 전체 신원 정보를 모으지 않고 개인정보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필요시 분산 인증 방식으로 필요한 신원을 확인한다. 신원의 본인 인증 후에는 자격에 대한 확인이 중요하다. 학력, 경력, 전문 능력 등의 자격은 발급된 자격 확인 문서의 위변조가 없어야 하는데 블록체인을 통한 증명서 발급과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높은 수준의 증명 신뢰를 보장할 수 있다. 

본인확인과 자격 확인 후에도 협력 대상의 능력에 대한 신뢰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 평판이 상대방에게 일을 맡길 만하지에 대한 신뢰성(trustworthiness)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평판이 신뢰성의 객관적 지표로 인식되었음에도 그 적용은 지금까지 오프라인의 영역에만 머물러 왔으며, 개인의 평판은 주로 긴밀한 오프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확인되어 왔다. 과거에도 평판을 온라인화 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가짜 댓들, 가짜 리뷰, 프라이버시, 해킹 등 인터넷 정보 신뢰에 대한 우려로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당장 모든 분야에서의 평판을 블록체인에 보관하기는 어렵지만, 학교, 직장, 지역사회 등과 같은 소규모 커뮤니티에서의 활동을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타인들의 평가 결과를 누적하여 위변조 할 수 없는 평판 정보로 관리한다면, 오프라인에서 다루던 신뢰 문제를 온라인으로 이동시켜 지인 중심의 협력을 넘는 사회 구성원간의 폭 넓은 협력이 가능한 “신뢰사회”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구성원들은 자신의 행동 결과가 누적되어 블록체인에 평판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어, 그들이 단기간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필자는 오프라인 영역에 머물던 신뢰를 블록체인 기반의 온라인 영역으로 확장하여 신뢰의 범위를 확장 시키고, 신뢰사회 구축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여 상호 협력이 보다 용이해진 신뢰사회를 이 소고에서 그려보았다. 이를 위해서는 블록체인 기반의 신뢰사회에서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 암호화폐를 넘어 신원 및 평판 정보를 포함하여야 한다. 현재 기술수준에서는 탈중앙화를 일정수준 희생하고 속도와 보안성을 높인 프라이빗 블록체인[4] 기술이 실생활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향후 블록체인이 점차 암호화폐의 유통을 통해 암호화폐 경제를 이끄는 역할을 하고 나아가 제2의 인터넷 역할도 하게 된다면 자율과 탈권위의 시대적 흐름과 만나 결국 신뢰사회로의 전환을 크게 촉진시키리라 예측한다. 

참고문헌

  1. 데이비드 데스티노, 신뢰의 법칙, 웅진지식하우스, 2019
  2. 마이클 토마셀로, 생각의 기원, 이데아, 2017
  3. 프랜시스 후쿠야마, 트러스트, 한국경제신문사, 1996
  4. 금창섭, 블록체인 미디어 적용 가능성과 블록체인 아키텍처 분석, 방송과 미디어 제23권 3호,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