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겨울호

Moshe Vardi의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숙고”

 

                                                                                                       저자: Moshe Vardi & Leaf Hoffmann
역자: 강성원(KAIST)

 

이 글은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숙고(Considering the Impact of Technology on Society)”라는 제목으로 기술분야 작가인 Leaf Hoffmann이 Moshe Vardi 교수를 인터뷰한 기록의 번역이다. 원문은 Communication of the ACM의 2023년 3월호(pp. 99-100)에 게재되었다. 마지막 질문과 대답을 제외한 모든 질의 응답이 여기에 번역되어 있다. Moshe Vardi는 Rice 대학교 전산학과 교수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Communication of the ACM의 책임편집자를 역임하였다. 그는 기업윤리, 기술과 윤리, 컴퓨팅과 사회 등의 주제로 기술과 사회에 연결성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당신은 자동 추론과 논리에 집중한 경력이 있지만, 최근 년간 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검토하는 데에도 활발하게 참여해 왔습니다.

저는 우리가 애미시(Amish) 사람들에게서 조금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미시가 반(反)기술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정확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애미시 사람들은 기술 반대자가 아니라, 그들이 지키고 싶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이 나타날 때, 애미시 원로 회의에서는 그 영향에 대해 평가하고 “그 영향이 무엇일까?”를 묻습니다. 저는 컴퓨팅 분야에서도 우리가 이와 같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기술인들이 스스로 묻지 않는 질문입니다.

“기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매우 근본적인 질문이지만,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하여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술인들입니다. 우리는 기술을 즐기고 기술적 도전에 흥분합니다. 애미시 사람들처럼 할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도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 그 영향이 무엇일까?”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애미시 사람들은 사람들이 긴밀한 공통체에서 살아가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말과 마차로는 멀리 갈 수 없지만, 자동차로는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핸드폰으로는 사람들이 서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만,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복잡하고 항상 긍정적인 영향만을 주지는 않은 기술 하나입니다.

우리가 잘 못하고 있는 일들 중 하나가 어떤 것을 대규모로 적용할 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평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Facebook이 수년간 내세우던 구호가 마찰 없는 공유였습니다. 25억 명의 사람들이 아주 쉽게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편리하지만, 온갖 종류의 다른 부정적인 현상들로 가는 문을 열어놓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현상들은 소셜 미디어 사용이 자리 잡힌 이후에야 많은 주목을 끌게 되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Erik Brynjolfsson과 Andrew McAfee의 말을 인용하면 우리는 “기계와의 경쟁”을 만들어내고, 소위 지식 경제를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ACM 커뮤니티의 우리들은 그 혁명의 승리자로서 그것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패배자인가요? 데이터는 미국의 노동 계급이 지난 세대에 비해 퇴보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경제학자들이 노동 양극화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고급기술직은 잘 나갔습니다; 실제로 고숙련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는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한편, 저숙련 노동자들은 지난 50년 동안 변하지 않은 최저임금을 받고 있으며, 노동 시장의 중간 기술 부분은 줄어들었습니다. 이것은 사회경제적으로 양극화된 사회를 만들었으며, 이러한 양극화된 사회에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듯이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밀어 넣었습니다.

 

인공지능(AI) 사회가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발전하는 다른 분야입니다.

딥러닝은 엄청난 성과를 거둬냈으며, 이제 우리는 Stuart Russell 이 제기한 질문을 해야합니다. “만약 성공한다면?”[1]이라는 질문이지요. 만약 우리가 인공 일반 지능을 개발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것이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물었던 질문입니다. 튜링의 1950년도 원래 논문으로 돌아가보면, 기계 지능의 가능성에 대한 놀라운 예언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튜링은 기술적인 도전에 대해 매우 기대를 하고 있지만, 그 논문은 그 결과에 대하여는 아무 말도 하고 있고 있습니다. Erik Brynjolfsson은 인간을 모방하려고 하면 인간의 모든 결함들을 그대로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튜링 테스트”라는 말을 “튜링의 덫”[2]으로 불렀습니다

 

학문 분야 내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 관점에서 어떤 진전이 있었나요?

우리 학문 분야는 우리가 하는 일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지 않았으며, 이 문제를 다루는데 지금까지 아주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실, 내가 예전에 자동화와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내가 이야기를 마친 후 누군가가 – 누구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 내게 다가와서 “말씀하신 것 같은 발표는 하지 마세요. 자금 조달에 좋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산업계는 성공을 거듭하고 있으며, “나는 실리콘밸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제 학생들도 많이 그리로 갑니다. 많은 학자들이 그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습니다. ACM도 이러한 회사들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대화는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사람들이 어려운 대화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은 “더이상 이야기하지 말자. 너무 유쾌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학생들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시나요?

제가 지도하는 학부학생들 중 많은 학생들이 졸업 후 실리콘 밸리로 가고 싶어합니다. 거기서는 그들이 학사 학위로 시작하는 월급이 아마도 박사 학위를 가진 조교수보다 높을 것입니다. 그들은 대학원에 가기보다 산업계에 가서 잘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저는 Rice 대학교에서 기술 윤리에 관한 강의를 설계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이 강의에서 기말시험이 없습니다. 대신, 학생들은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에 관한 에세이를 써야 합니다. 어떤 에세이들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어떤 학생들은 “나는 전에는 거의 눈이 멀었었지만 이제는 볼 수 있다. 기술은 무조건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더 복잡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공공보건부터 정치 문제까지 많은 이슈들에 대한 논의를 어렵게 만드는옳지 않으면 그르다 이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있도록 도움을 있다면 공공에 이익을 주는 아주 좋은 기여가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검은색이 아니면 흰색이다’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것처럼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기술은 엄청난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이 대화를 Zoom을 통해 할 수 있고, 제가 당신의 얼굴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팬데믹 기간 동안 대부분의 지식 노동자들은 집에서 일할 수 있었고 경제는 붕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것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만약 당신이 교육받은 전문가라면, 버블[3]속에 살고 있고 대부분 다른 교육받은 전문가들과 소통을 합니다. 자신의 버블 밖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은 대부분 거래적이며,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거의 알 수 없습니다. Amazon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누군가가 집으로 그것을 배송합니다. 만약 내가 집에 있다면 배송원에게 간단히 감사 인사를 건넬 수 있지만 들어와서 커피 한 잔을 드시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마 저부터 커피 한잔을 대접해야 하겠지요.[4]

 

[1] https://bit.ly/3BNTsOw

[2] https://stanford.io/3JAXbkt

[3] 팬데믹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같이 하는 집단.

[4] 생계나 공익을 위해 버블 속에만 머물 수 없는 사람들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