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증 교육과 민주주의
강성원(KAIST 교수)
논증
논증[1]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행위 또는 아이디어가 옳거나 그르다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목적으로 제시된 이유 혹은 이유들”이다.[2] 논증은 생활과 사회 활동에서 설득, 협상 및 의사결정의 수단이 되고 발견과 탐구와 같은 학문활동에도 필요불가결하다. 다음은 아인슈타인을 20세기의 최고의 과학자로 만든 논증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맞다면, 개기일식때 달 주위의 별의 위치가 평소의 달 주위의 별의 위치와 다르게 관측될 것이다(명제 1). 1919년 개기일식 때 에딩턴은 달 주위의 별의 위치가 평소의 달 주위의 별의 위치와 다르다는 것을 관측하였다(명제 2). 그러므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옳다(명제 3).
이 진술들은 명제 1과 명제 2를 전제로 하고 명제 3을 결론으로 갖는 하나의 논증이다. 과학자들이 명제 3과 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옳다는 결론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그들이 논증의 전제들인 명제 1과 명제 2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증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논증이다. 위의 논증은, “만일 명제 A가 참이면 명제 B가 참이다. 명제 A가 참이다. 그러므로 명제 B가 참이다.”이라는 타당한 논증과 달리 “만일 명제 A가 참이면 명제 B가 참이다. 명제 B가 참이다. 그러므로 명제 A가 참이다.”라는 형태를 갖기 때문에 두 개의 전제가 결론을 함축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논증이다. 그러나 합리적인 사람은 위의 논증을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결론을 수용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일상과 학문에서는, 연역적으로는 타당하지 않지만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수용하는 많은 설득력 있는 논증들이 있다. 또 그럴듯한 논증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오류가 들어 있고 심지어 그런 오류가 의도적으로 심어진 논증들도 있다. 따라서 일상의 대화에서나 학문을 수행함에 있어서, 논증을 식별하고 논증의 설득력을 평가하는 능력은 대화와 학문 수행을 효과적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능력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치가들의 궤변과 가짜뉴스
21세기에 나타난 많은 새로운 사회 현상들 중 민주주의 사회를 위협하는 두드러진 현상으로 정치가들의 궤변이 과거보다 부쩍 많아지고 더 교묘해졌다는 점과 가짜뉴스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016년 미국 대선 때 등장했던 “프란치스코 교황,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를 선언하여 충격”이라는 제목의 뉴스는 잘 알려진 가짜 뉴스이다.[3] 가짜뉴스는 “선거 때가 되면 으레 기승을 부리는 온갖 가짜뉴스가 사회적 미디어에 넘쳐난다.”[4]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아졌다. 또한 하루에도 몇 개씩 언론 매체에 등장하는 정치가들의 궤변은 일반인들의 정치적 판단을 흐리게 하지만, 논증에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은 이들의 논증에 의도적으로 감춰져 있는 오류를 쉽게 식별하지 못한다.
얼마전 여당 지도자가 여당의 잘못을 지적하는 질문을 받자 야당도 집권했을 때 그러지 않았냐고 답변했다.[5] 이는 무방비한 청중에게는 일견 그럴 듯한 말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논증의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 답이 질문에 대하여 정당하게 답변한 것이 아니라 논의의 초점을 여당의 지적된 잘못에서 야당의 잘못으로 옮기는 “논점이탈의 궤변”을 범한 것이거나, 아니면 여당이나 야당이나 어느 쪽이 더 나을 게 없다는 “피장파장의 궤변”을 범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여당 지도자의 답변에 대하여 (예기치 않게) 여당 대변인이, 과거에 여당이었던 야당처럼 잘못하지 말라고 국민들이 과거의 야당을 현재의 여당으로 만들어 준 게 아니냐는 성찰적 지적을 하였다. 이는 여당 지도자의 답변을 위의 두 가지 궤변 해석 중에서도 “피장파장의 궤변”인 것으로 본 지적이었다.
언론 매체에 빈번히 등장하는 이런 궤변과 가짜뉴스들은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제도에서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국가의 중요한 선택과 결정을 하는데, 궤변과 가짜뉴스는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심지어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을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으로 잘못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 그들을 궤변과 가짜뉴스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잘못 투표하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논증 교육 현황
앞의 궤변의 분석에서 볼 수 있듯이, 논증 분석에 훈련된 사람은 논증의 잘못된 점을 파악하여 이로부터 올바른 논증과 올바른 판단이 이어지게 할 수 있다. 논증의 오류를 파악하고 올바른 논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이 바로 비판적 사고[6]의 교육이다.
비판적 사고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한 의사 결정에 초점을 맞춘 합당하고 반성적인 사고”이다.[7] 또한 미국철학회가 철학자, 교육학자, 사회과학자, 자연과학자들 46명으로 구성된 전문가들이 수행한 연구 결과에서 비판적 사고는 “의도적이고 자기 규제적인 판단으로,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증거적, 개념적, 방법론적, 표준적, 혹은 문맥적 고려사항들에 대한 해석, 분석, 평가 및 추리와 더불어 설명을 산출한다.”[8]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적 사고의 개념들에서 볼 수 있듯이 비판적 사고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교육×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 교육과정에서 제공되는 비판적 사고의 교육×훈련은 시간적으로도 부족하고,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되지 못하는 상황이다.[9] 우리나라에서 비판적사고 능력을 평가 측정하는 논술시험이 대학교 입시에 처음 포함된 것이 1986년이었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일부대학교의 일부 학과만이 논술시험을 요구하였고 논술 준비를 할 수 있는 교육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소수의 고등학생들 만이 비판적 사고를 공부할 수 있었다. 1997년부터 논술시험은 “시사문제 중심, 고전논술 등 여려 형태로 변화해 오다 2000년대 중반부터 여러 영역의 사고력을 통합해 측정”하는 시험이 되었고, 2013년에는 우리나라 4년제 대학교 198곳 중 14%인 28개 대학이 논술로 신입생을 선발하였다.[10] 따라서 비교적 많은 고등학생들이 비판적사고의 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 20년의 일로 볼 수 있다.[11] 즉 현재 30대를 포함하여 그 이하의 연령에 있는 사람들의 일부만이 비판적 사고의 교육을 받았고, 비판적 사고의 교육을 받지 않은 이 연령층 밖의 일반인들은 궤변과 가짜뉴스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그리 높지 않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논술시험을 위해 비판적 사고의 교육×훈련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에도, 이런 교육×훈련이 주로 대입 논술시험 준비 및 시험에 필요한 작문 중심으로 진행되어 현실의 궤변과 가짜뉴스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다.
맺는 말
가짜 뉴스에 대해서는 정보 매체의 개선을 통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12] [13] 그러나 정보 매체의 개선은 가짜 뉴스의 확산을 막아 줄 수는 있어도, 개개인이 가짜 뉴스와 궤변을 파악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정치가의 궤변과 가짜뉴스를 시민들 각자가 스스로 간파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여 진정한 자기 의사를 정치에 반영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비판적 사고 능력과 논증 능력을 가져야 한다.
물론 비판적 사고의 교육을 받아도 모든 사람이 올바른 논증과 판단 능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14] 그러나 필자는 비판적 사고의 교육이 자라나는 세대 뿐 아니라 기성 세대에까지 보편적 교육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비판적 사고의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40대 이상의 사람들이 민주주의 사회의 주인 답게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판적 사고와 논증에 대하여 공부할 기회가 널리 제공되면 이를 배우는 사람들도 더 흥미를 가지고 깊이 알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비판적 사고와 논증에 숙달된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것이 정치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비판적 사고 능력으로 무장된 시민들은 거짓을 알아보고 진실을 요구하여 정치발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문해율[15], 지능, 순발력, 적응력의 자질을 지닌 한국인들이다. 좋은 환경만 갖추어지면 우리의 잠재력은 현실의 능력이 될 것이다.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모두가 궤변에 가려진 거짓을 꿰뚫어보고 설득력 있는 논증을 구사할 수 있어, 중요한 사회적 결정들에 있어서 시간과 노력의 허비없이 합리적인 합일점에 도달하는 그런 세상을 기대해 본다.
참고 문헌
[송두율 2020] 송두율, “가짜뉴스의 시대”, 경향신문, 2020.01.20.
[김명일 2022] 김명일, ““민주당처럼 하지 말라고 뽑아준 것” 尹 공개 비판한 국힘 대변인”, 조선일보, 2022.07.05.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2/07/05/WZU3J3K2KJE3XGXT23F4HDFZ3Q/
[한국공학교육학회 2021] 한국공학교육학회 비판적사고교육위원회, 공학도를 위한 비판적 사고 교육, 황영미, 박상태 편집, 한국학술정보(주), 2021.
[Facione 1990] Peter A. Facione, Critical Thinking: A Statement of Expert Consensus for Purposes of Educational Assessment and Instruction – Executive Summary of “The Delphi Report by American Philosophical Association”, 1990.
[송현숙 2013] 송현숙, “대입 논술시험의 역사”, 경향신문, 2013.01.08.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001202111015#c2b
[O’Connor 2019] Cailin O’Connor, James Owen Weatherall, The Misinformation Age: How False Beliefs Spread, Yale University Press, 2018.
[김광수 2007] 김광수, 논리와 비판적 사고, 쇄신판, 철학과현실사, 2007.
[박은진 2008] 박은진, 김희정, 비판적 사고, 아카넷, 2008.
[앤 톰슨 2009] 앤 톰슨, 비판적 사고: 실용적 입문, 최원배 옮김, 서광사, 2009.
[홍경남 2011] 홍경남, 논증의 이해 비판적 사고를 위한 논리, 중앙대학교출판부, 2011.
[정지윤 2007] 정지윤, “논술교육 현황 및 문제점 개선 연구”,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윤초희 2016] 윤초희, “국내외 비판적 사고교육 효과연구 고찰: 쟁점과 향후 연구과제”, 아시아교육연구 17권 4호 pp. 1-3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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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rgument
[2] “A reason or a set of reasons given with the aim of persuading others that an action or idea is right or wrong,” Google Oxford Languages.
[3] [송두율 2020]
[4] [송두율 2020]
[5] [김명일 2022]
[6] critical thinking
[7] 이 비판적 사고의 정의는 오늘날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Robert Ennis의 정의이다 ([한국공학교육학회 2021]p.20)
[8] [Facione 1990]p.2, “We understand critical thinking to be purposeful, self-regulatory judgment which results in interpretation, analysis, evaluation, and inference, as well as explanation of the evidential, conceptual, methodological, criteriological, or contextual considerations upon which that judgment is based.”
[9] [정지윤 2007][윤초희 2016]
[10] [송현숙 2013]
[11] 비판적 사고에 대한 대표적인 국내 서적의 발간 연도를 보아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김광수의 “논리와 비판적 사고”는 2007년에, 박은진의 “비판적 사고”는 2008년에, 앤 톰슨의 “비판적 사고: 실용적 입문”의 번역서는 2009년에, 홍경남의 “논증의 이해” 초판은 2011년에 각각 발간되었다.
[12] [O’Connor 2019]
[13] [송두율 2020]
[14] [김광수 07]p.8에서 “논증을 재구성하는 일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오직 소수의 구도자적 정신을 가진 독자들에게만” 자신의 책을 권하고 싶다고 말한다.
[15] literacy r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