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도약하는 이카로스들을 위하여
빅피처랩 대표 금창섭
제2의 벤처 붐이 불고 있다. 지난해 만들어진 창업 기업만 142만 개라는 것에서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단순히 사업체의 개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2021년 신규 투자액 역시 2017년에 비해 약 3배 정도 늘어난 7조 7,000억의 규모로 무서운 상승세를 보여준다[1]. 또한, 개인들이 돈을 모아 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엔젤 투자’ 역시 2018년에 이미 5,538억 원을 기록해 제1벤처 붐 때의 투자액을 넘으며 역대 최고 수치를 경신했다[2].
벤처 붐은 개인적인 차원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개인의 강점과 관심사를 살린 자신의 회사를 설립할 수 있고 그 결과 더 큰 성취와 자아실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국가적 관점에서 봐도 일자리 창출, 외화 수입, 국력 향상 등 많은 긍정적 요소가 있다.
제2벤처 붐에 정부 역시 크게 호응하는 듯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창업지원 사업 예산은 3조 6,668억 원의 규모로 역대 최대이다. 벤처 사업을 향한 관심과 투자 자체는 괄목할 만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는데 우리 정부는 ‘청년’창업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 결과 대학생으로 대표되는 청년을 위한 창업 정책은 넘쳐나지만, 이미 뛰어난 기술력과 다양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고급인력인 ‘시니어’의 창업에는 별다른 정책이 없는 듯싶다. 올해만 봤을 때도 ‘청년 특화 창업 지원 사업’, ‘농림·문화 분야 청년 및 대학생 전용 창업지원 사업’. ‘청년창업사관학교’ 등 청년창업을 위한 사업[3]의 수와 예산은 막대하지만, 시니어 창업을 위한 사업과 예산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실정이다.
청년 실업도 시급한 국가적 문제이지만 고령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퇴직 후 실업’ 역시 급한 문제다. 퇴직 후 실업 문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것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기대수명은 늘어가는 데 반해 실질적인 퇴직 시기는 점점 빨라지기 때문이다. 2021년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함께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정년퇴직 시기는 ‘평균 49.5세’였다[4]. 인생 100세 시대 사회에 50세도 안 된 나이에 정년퇴직이라니!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인가. 게다가 대기업에서 임원직을 역임한 유능한 인적자원도 퇴직 후 재취업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여느 뉴스 기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년퇴직자의 상당수가 퇴직 후 굉장히 어려울 상황에 직면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이 상황의 해결방안으로 ‘퇴직 후 벤처 창업’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원활한 창업이 가능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새로이 백지상태에서 정책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지만, 예산확보의 문제도 있을뿐더러 어떻게 시작할지 구체적인 방안을 만드는 문제가 만만치 않다. 보다 현실적인 방법으로 이미 존재하지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정책을 수정 보완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그러한 정책 중 주목할만한 것이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혁신 창업 정책이다. 출연연에는 세계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박사급 인적자원이 풍부하며 연구기관 특유의 정적인 환경에서 오래 근무한 연구원들이 창업과 같은 도전적인 일에도 새로이 흥미를 느낄 가능성이 많아 창업 정책을 펼치기에 적합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출연연 혁신창업 정책을 고려한다면 관련하여 필자가 제언하고 싶은 사항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출연연 혁신창업에 대한 심리적 허들을 낮춰야 한다. 출연연 혁신창업의 출발은 우수한 기술을 가진 박사연구원들이 `창업의 길`에 나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대부분 모험적인 삶보다는 안정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창업했다 실패하면 어떡하지?` 이런 실패에 대한 공포는 창업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지고 이 두려움이 창업의 최대 걸림돌이다. 설령 창업이 실패해도 이전 직장으로 복직해서 다시 연구 업무에 매진할 수 있다면, 단지 연구만 수행하던 이전과 달리 사업화 경험이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현행 창업 휴직 기간이 최대 6년이라는 점이다. 6년은 언뜻 생각하면 긴 시간으로 보이지만 첨단기술 중심의 기업이 설립 후 IPO나 EXIT(회수)에 걸리는 평균 기간이 10년이 넘는 현실에 비추어 성공 혹은 실패를 경험하기에는 다소 촉박한 시간이다. 한창 사업 중인 연구원 출신 기업대표에게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복귀할 기한이 다가온다면 난감한 일이다. 창업 휴직 기간이 적어도 10년은 되어야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혁신기술창업 도전 길에 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민관협력형 출연연 혁신창업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출연연 출신 창업가가 보유한 기술의 수준은 결코 글로벌 스타트업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출연연 창업이 너무나 기술 중심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성공 사례를 보며, 시장의 문제를 잘 아는 사업화 전문가와 기술 전문가가 함께 연결되어 시너지를 내는 데 반하여 우리나라의 경우 출연연 박사연구원들은 사업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채로 시장의 니즈와 무관한 기술 개발에 매달리다가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장에서 어떤 제품이 필요한지를 아는 것은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고 이를 마케팅하고 세일즈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즉, 출연연 박사연구원들이 기술개발에 매달리며 회사 운영을 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창업 초기부터 시장전문가와 함께 공동창업하는 형태가 좋겠지만, 출연연 창업의 경우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출연연 내부에 있는 기술창업 지원부서가 사내벤처를 인큐베이팅할 때부터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액셀러레이터를 참여시켜 창업아이템을 함께 기획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출연연 기술창업 지원부서는 아직은 시장 경험이 부족하여 민간 액셀러레이터와 협력하여 시스템을 익히고 배우고 축적해야, 출연연 고유의 혁신창업 모델을 견고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
셋째, 혁신창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혁신창업 성공률을 높여야 한다. 혁신창업에 도전하는 연구원의 수가 늘어나고 이들이 시장에 진출하여 성과를 내고 출연연에 복귀하고, 민관협력 창업지원 모델의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면 혁신창업 성공률은 높아지게 된다. 혁신창업 선순환 구조는 그간 지적되던 출연연의 연구개발 생성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시장 경험을 가진 창업가들이 예전 일터로 복귀한다면 이전에 버려지던 연구개발 결과물이 새 주인을 만나 사업화에 성공할 가능성이 이전에 비해 높아지게 된다. 복귀한 연구원들은 자신의 경험을 후배들과 공유하고, 마음에 맞는 후배들과 출연연 기술을 활용한 두 번째, 세 번째 창업에도 나설 수도 있다. 아울러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시장 활용도가 더 높은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어서 연구결과물의 기술이전 비율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로스는 항상 하늘 높이 날아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너무 높거나 낮게 날지 말라고 늘 경고했다. 결국, 이카로스는 이를 어기고 너무 높이 날아 태양에 날개가 녹아 추락사한다. 이카로스가 아버지의 말을 안 들어서 죽었으니 그의 죽음에 그만이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높게 날아본 적이 없는 자가 너무 높게 나는 것과 너무 낮게 나는 것의 경계를 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이카로스의 죽음에 더 큰 책임은 그의 아버지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이카로스의 날개가 태양에 가까이 가도 녹지 않도록 날개를 강화하는 방법을 찾아 미리 보완했으면 그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도 이카로스가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최소한 그를 세심히 관찰하고 안전장치를 사전에 마련했으면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창업 역시 이카로스 신화와 비슷해 보인다. 성공한 창업자 중 첫 번째 시도로 사업을 성공시킨 사람은 매우 드물다. 다시 말해 창업은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자 ‘추락의 연속’이며 ‘추락과 재도약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추락은 이미 지킬 것이 많은 시니어에게 더 뼈아프다.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Intel의 창업자 고든 무어는 39세의 나이에 인텔을 설립했고 맥도날드의 공동창업자 레이 크록은 53세의 나이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으며 심지어 KFC 할아버지로 유명한 커넬 샌더스는 62세에 KFC를 창업했다. 도전이 없었다면 이런 눈부신 성과 역시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청년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도 해야 하지만 시니어 창업에도 더 섬세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끊임없이 추락해도 결국 높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정부는 언젠가는 높이 날 그들을 위해 추락했을 때도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높이 날아 태양을 넘어 국가를 빛내는 유니콘들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유니콘 기업을 만들 창업자의 나이는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에 오직 ‘청년’에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시니어’ 쪽에도 힘을 실어 균형을 맞추면 좋을 것이다. 그 첫걸음으로 정부가 출연연 혁신 창업 정책을 보완해 출연연 연구원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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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2의 벤처·창업붐, 일관된 정부 정책으로부터…』, 매일경제, 2022.5.27
[2] 『“역대 최대” 벤처투자액 4조원 달성…GDP대비 세계 4위』, IT 조선, 2020.1.29
[3] 『정부, 올해 3조 6668억원 규모 창업지원사업 시행…4일 통합공고』, 중소벤처기업부, 2022.1.3
[4] 『직장인 체감하는 정년퇴직, ‘평균 51.7세’』, 잡코리아, 2021.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