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겨울호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정보통신 기술의 선용(善用)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안신영 (책임연구원, 공학박사)

 

‘Don’t be evil’ 은 나쁜 일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Google의 설립 모토이다. 2018년 4000명 이상의 구글 직원들은 미 국방부와의 공동 연구 프로젝트인 ‘메이븐 Maven’을 폐지해달라는 서명 운동에 나선 일이 있었다. 메이븐 프로젝트는 구글의 텐서플로우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무인 항공기가 수집한 영상 정보를 자동 분석해 타격 목표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한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로, 구글 직원들은 자사의 AI 기술이 무기개발에 쓰이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구글 경영진은 결국 메이븐 프로젝트의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게 된다[1].

디지털, AI 기반의 과학 기술에 대한 의존도와 영향력이 커져 갈수록 정보통신 기술의 윤리적 선용(善用)에 대한 필요성과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정보통신 기술의 선용이 낳는 긍정적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정보통신 기술의 선용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 알아본다.

 

착한 소비와 정보통신 기술이 만나다.

유럽의 한 시민이 슈퍼마켓에 방문해 스마트폰으로 구매할 상품의 바코드를 스캔해본다. 상품 정보를 제공하는 앱을 통해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제품을 구매하기로 결정한다. 이 앱은 제작 과정에 문제가 없고 친환경적인 제품은 초록색으로, 문제가 있는 제품에는 빨간색으로, 어느 쪽인지 불분명한 제품은 노란색으로  표시1해주기 때문에 80% 이상의 소비자는 같은 가격이면 착한 제품을 사는 일에 비교적 손쉽게 동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소비자의 친환경적, 윤리적 소비를 촉진하는 사회적 현상은 기업의 상품 제작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례로 초콜릿 크림을 만드는 한 유명 외국기업은 불공정 거래를 통한 식자재를 사용함이 드러나 ‘위그린 지속가능성 발자국’의 빨간색 평가를 받게 되어 소비자들의 외면을 경험한 후에 문제 상황을 개선한 바 있다[4].

위와 같은 일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바로 독일의 스타트업 WeGreen이 자리하고 있다. 뜻을 함께하는 400여 개의 각종 비영리단체, 인증기관 등과 함께 협력하여 빅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으로 수 많은 다양한 상품 자료를 한 데 모아, 소비자 자신이 구매하고자 하는 제품의 가격이나 품질뿐만 아니라 환경, 공정무역, 인권 등 지속가능성 측면까지 투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 사람의 윤리적 행동은 그가 지닌 도덕적 의지와 실천력에 기반하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즉 윤리와 과학 기술이 만나 긍정적 시너지를 일으키게 된다면 WeGreen의 행보와 같은 파급력을 갖게 된다. 조직적이고 집단적 형태의 윤리적 행동이 사회의 불공정을 바로잡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게 된다. 더 나아가 지구 환경을 지켜내는 데 큰 기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육과 정보통신 기술이 만나다.

누구에게나 다시 찾고 싶은 과거의 순간이 있다. 많은 우려 속에서도 화제를 낳았던 특집 VR 휴먼다큐 ‘너를 만났다’(2020.2.6.방영,MBC)에서는 어린 나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딸을 가상현실(VR) 기술을 통해 다시 만나보는 한 엄마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 순간 시청자들 모두 엄마의 심정이 되어 눈물을 삼키며 딸 아이를 함께 만났다. 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함께 꽃밭에서 뛰어노는 장면은 딸을 잃었던 엄마의 마음 속 간절한 염원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비현실과 현실이 만나는 접점에 바로, 가상현실(VR) 기술이 있다.

가상현실(VR)이란 컴퓨터로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이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첨단 기술을 말한다. 2016년부터 구글은 익스페디션(Expedition) 서비스를 통해 우주, 해저, 피라미드, 궁전 등 학생들이 가보고 싶은 지역을 가상현실로 옮겨 수업에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큐리스코프(Curiscope)라는 IT 벤처는 티셔츠에 스마트 폰이나 태블릿을 대면 인체 내부 장기의 모습과 움직임을 생생하게 3D로 보여주는 AR 기반의 신체구조 학습 콘텐츠인 ‘버추얼리티(Virtuali-Tee)’를 개발하여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하였다[2].

이러한 VR 기술이 인문학 가치 중심 교육과 만나면 어떠한 일이 펼쳐질까? ‘가치’ 교육은 마음을 움직임으로써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 근대 역사의 가장 큰 사건인 일제의 점령과 한국전쟁에 관해 생생한 이야기를 자신과 가장 가까운 부모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다면 어떨까? 2020년대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우리 역사 속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은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부모님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없다. VR 기술을 활용하여 부모님으로부터 역사적 사건을 직접 체험한다면, 학생들은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정신과 통일의 중요성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VR 기술을 활용한 역사 수업이 이루어진다면 학생들은 임진왜란 시기의 한산도(閑山島) 앞바다 전투에 나가 이순신의 지휘에 따라 군사가 되어볼 수 있다. 또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로 들어가 유관순과 함께 태극기 깃발을 흔들며 항일운동에 참여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VR과 AR을 활용하여 1950년 6.25. 피란민의 상황으로 이동해보거나 남과 북이 대치하는 공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훌륭한 산(産)교육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통일의 중요성에 대해 서로 진중하게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VR 기술을 통해 활자 속의 역사가 아닌 실재했던 역사의 한 장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된다면, 글로 배우고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리는 역사 학습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으로 뚜렷이 기억할 수 있는 생생한 역사 교육을 경험하게 된다. 이처럼 가상현실 기술은 흥미와 몰입을 극대화 할 수 있고, 개인맞춤형 교육의 특징을 가지는 ‘스마트 교육’으로 진화하고 있다.

 

복지와 정보통신 기술이 만나다.

2000년 개봉 영화 바이센터니얼 맨(Bicentennial Man)에서의 로봇 주인공 앤드류는 가사 도우미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 후 20여년이 지난 현재, 레스토랑에서는 로봇이 음식 주문을 받기도 하고 서빙을 하기도 한다. 어떤 빵집에서는 고객에게 말을 걸며, 시식빵을 권하는 로봇을 만나기도 한다. 그뿐인가? 로봇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앞으로 택배 물품을 배달해주기도 한다. 요즘과 같은 언택트(Untact)시대에는 사람보다 로봇을 대면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편안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주요 선진국들은 복지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하는 과학기술을 의미하는 ‘복지 기술’을 선도적으로 적용 확대하고 있다. 최근 복지 기술은 “통신 지원, 보조 기술, 일상생활 지원, 질병 모니터링 및 원격 진료, 재활 기술, 오락, 사회적·감정적 지원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되고 있다[2]. 즉 복지 기술이 과거에는 취약 계층을 보조하기 위한 기술에 머물렀지만 현재에는 사람들이 생산적인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술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로 설계된 스마트홈은 노인과 장애인들의 이동의 편의성과 안전성을 높일 것이며, 거주자의 생체 신호를 모니터링하여 위급상황 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감정형 로봇을 통해 우울증이나 향수병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적 지원이 가능해질 것이다.

의료계에서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는 사례는 이미 우리와 친숙하다. 암환자의 치료계획 수립에 도움을 주고 있는 왓슨이 의사들의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해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앞으로도 개인의 유전 정보, 건강 이력, 의료기기로 측정한 인체 정보, 헬스케어 정보 등 다양한 의료 빅데이터를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분석 기술과 결합하여 신속하고 정확하게 질병을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복지기술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특별히 신체적, 정신적 부자유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복지의 개념은 단순히 불편함을 소거해주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그들이 자립할 수 있게 하며, 일할 수 있게 하며, 그로 인해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만드는 수준까지 닿아야 한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의 도입으로 개념화된 ‘복지 기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고 복지사회, 복지국가로의 실현이 가능해질 것임을 알 수 있다.

 

결론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사전적 의미의 행복이란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의미한다. 결국 행복이란 구체적인 우리들의 삶, 생활에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심리적, 신체적 위험을 수반한 물리적 환경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가 없다. 타인의 침입이나 해킹이 가능한 상황에서라면, 최첨단 기술이 탑재된 컴퓨터를 활용해 영화를 본다거나 가족의 추억이 담긴 영상을 편집하는 일 등이 그리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본 고에서는 정보통신기술이 착한 소비와 교육 및 복지를 위해 선하게 사용되었을 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보통신 기술이 사회 경제적으로 선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ESG 혁명이 온다’ 김재필(한스미디어) 알기 제4장 위기에 강한 찐 기업 가려내기 187p

[2] ‘대한민국 제4차 산업혁명’ 심진보 외(콘텐츠하다) 95p

[3] https://www.bloter.net 위그린 “빅데이터로 ‘착한 상품’ 알려드려요.” 기사

[4] 명견만리 윤리 기술 교육 중국편, kbs 제작팀(인플루엔셜)

1 이와 같은 평가 결과를 “위그린(Wegreen) 지속가능성 발자국”이라 부른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