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환을 기다리며
강성원(KAIST 교수)
2001년부터 18년간 한국에 거주하며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개발 기술과 소프트웨어 개발 문화를 개선하기 위하여 고언(苦言)과 지도를 아끼지 않았던 ABCTech의 김익환 대표가 2019년부터는 활동 기반을 실리콘밸리로 옮겼다. 김대표가 앞으로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고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리라 예상하지만, 지난 18년과 같이 우리나라에서의 소프트웨어 개발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대하고 좋은 조언을 생생하게 해 주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김대표의 공백기를 맞아, 그가 소프트웨어와 사회에 대하여 특히 어떤 점을 지적하고 사람들을 일깨우려 하였는지를 짚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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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표는 “사회”라는 단어보다는 “우리나라의 문화”,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문화”를 주로 언급하였다. 문화란 결국 사회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동양문화, 불교문화 등과 같은 표현을 쓸 때 동일한 문화권을 그 문화권의 사회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문화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그의 생각을 되새겨 봄으로써 소프트웨어와 사회에 대하여 중요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문화가 소프트웨어 개발에 미친 영향으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1] 무형의 가치를 잘 인정하지 않으려 . . . [한다.] ” “자동차나 냉장고 같은 하드웨어는 제값을 받고 파는 데 문제없지만, 소프트웨어는 그 가치를 잘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 번 만들어 놓으면 . . . 복사만 하며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돈 내고 소프트웨어 제품을 사는 것을 아까워한다. 하물며 그냥 대화만 하면서 자문을 해주는 것에는 돈을 지불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2]
“내가 썬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을 보면 다른 회사를 갔다가 다시 썬마이크로시스템즈로 돌아오는 경우가 반이 넘는다. 어떤 친구는 두세 번씩이나 왔다 갔다 한 친구도 있다. 자기 고향처럼 심심하면 돌아온다. 회사를 떠난다고 해서 배신했다거나 하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이 회사 저 회사 왔다 갔다 하면서 얻는 정보의 신속한 교류가 미국 IT산업의 발전요소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퇴사한다고 하면 회사는 일단 그 퇴직자를 배신자로 취급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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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는 사회의 구성원들 의식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이로 인해 산업의 가치 기준이나 산업 경쟁력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김대표가 소프트웨어 개발 공통체의 문제점들로 특히 지적한 공유의식의 부재, 상급자의 권위의식과 엘리트 카르텔의 폐해에 주목해 보기로 한다.
첫째로 공유의식의 부재인데, 공유의식이란 사회, 조직, 혹은 집단의 구성원이 어떤 것을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생각하는 의식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개발자들의 협력에 의해서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공유의식은 소프트웨어 개발 조직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사항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중요한 이와 관련된 한 측면이 소프트웨어 문서화(documentation)이다. 김대표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소프트웨어 문서화가 잘 안 되는 이유의 하나가 개발자들의 공유의식이 약한데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문서를 쓰기 좋아하는 개발자는 거의 없다. 하지만 문서 대신 말로 전달하라고 하면 [많은 한국의 개발자들은] 시간을 내기도 싫어한다. 문서나 말이 문제가 아니라 공유하려는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필자가 가진 지식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야 하는 절대적인 미션이 주어졌다면 필자는 아마 문서로 작성하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다. 말은 여러 명에게 반복해서 전달해야 하지만 문서는 한번만 작성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문서를 쓰기 싫다는 것은 말을 하는 것도 싫다는 것이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4]
둘째로 상급자의 권위의식인데, 이는 우리 나라 도처의 조직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상급자가 과도하게 하급자를 관리하고[5] 때로는 자신의 무지로 때로는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불필요한 일을 만들고 시키는 것이다.
“. . . 한국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늘 벌어지는 상황이다. 제품 개발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제품이 다 되었다니까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 . . 사장님이 와서 보고는 이 부분이 마음에 안 드니 고치라고 한다. 휴대폰과 같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웹 포털, 패키지 프로그램 다 마찬가지다. 그러면 회사를 그만두려고 마음먹지 않은 이상 [개발자는] 고쳐야 한다. . . . 마치 그대로 받아들이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상급자는] 생각하는지 자기 의견을 내놓는다. 그리고 그 의견은 대부분 요청이 된다. 그 다음부터 벌어지는 지옥 같은 상황을 개발자라면 다 알겠지만 요청하는 사람은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행동이 기업과 그 구성원 모두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상황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 심각성을 평생 모르고 사는 경영진이 대부분일 것이다. . . . “[6]
이런 현상은 단기적으로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격무, 소프트웨어 품질의 저하, 심지어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부서나 회사를 떠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경쟁력을 점차 약화시키게 된다. 이와 비슷한 현상으로 전문 경영자가 아닌 재벌 총수나 기업 대표들에 의한 그릇된 지도나 부적절한 요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매스컴을 통하여 적지 않게 보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역사가 짧고 소프트웨어 기술과 교육이 빠르게 발전하여, 경험 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적은데 비해 젊은 인력이 더 많은 교육 훈련의 기회를 갖는 우리나라의 환경에서, 상급자의 권위의식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상대적 몰이해로 인해 불 필요한 일이 만들어 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세째로 엘리트 카르텔의 폐해인데, 이에 대해서 김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 콜게이트대학 정치학과의 마이클 존스턴 교수는 각국의 부패 현상을 네 가지 유형으로 설명했다. ‘도재형, 족벌체제형, 엘리트 카르텔[7]형, 로비 시장형’이 그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를 엘리트 카르텔형의 대표 국가로 꼽았다. . . .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개발자나 소비자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이너서클(Inner Circle, 소수의 핵심권력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 교수, 국회, 정부, 언론과 같은 엘리트 계층의 이익을 위해 많은 정책이 결정되어 왔다. 무지한 대중들은 엘리트 권력의 이너서클에 이용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 . 국내 보안이나 금융권의 IT 기술이 독특하게 진화해 온 것도 엘리트 카르텔의 이익 때문이다.”[8]
여기서 그가 말하는 독특한 진화는 소수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다수의 소비자와 산업 및 서비스 경쟁력을 희생시키는 큰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9] 엘리트 카르텔의 폐해는 소프트웨어 개발 공동체만 겪는 것은 아니다. 김대표는 엘리트 카르텔에 의해 일반 국민들이 피해를 본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금융위기 때의 미국의 금융엘리트들의 행태를 예로 들었다. 많은 미국 국민이 큰 재정적 피해를 입었을 때에도 월가(Wall Street)의 금융엘리트들은 거액의 보너스를 받았다.[10] 월가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Goldman Sachs)가 오랜 기간 미국 행정부의 인재 파이프라인으로 자리 잡아 “Government Sachs”라고도 불리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또 다른 예로 미국의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가 있다.[11] 미국의 국방분야와 국방산업의 관계자들의 엘리트 카르텔이 미국의 국제정치 정책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많은 분야에 이런 엘리트 카르텔이 존재하여 그로 인해 일반인들이 눈에 잘 보이지 않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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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환 대표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전문가로서 이 분야에서 발견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장애가 되는 요인들로, 공유 의식의 부재, 상급자의 권위의식, 그리고 엘리트 카르텔의 폐해를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앞에서 여러 관련 예가 보여주듯이 문화적인 현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다.
사회 전체의 문화가 바뀌기는 쉽지 않다. 어느 한 전문화된 분야에서 문화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물론 쉽지 않지만, 사회 전체의 문화가 바뀌는 것보다는 훨씬 쉬울 것이다. 또한 한 분야에서의 문화적 변화가 생산성의 향상, 제품 품질의 향상과 구성원의 행복의 증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그 변화는 사회의 다른 부분까지 들불처럼 번져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개발 공동체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화적 변화의 촉매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는다. 또한 김익환 대표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개발 공통체의 발전을 위해 많은 충정 어린 고언을 했던 것처럼 이제 그의 역할을 해 줄 제 2, 제3의 김익환이 기다려 진다.
참고문헌
[1] 김익환, 대한민국에는 소프트웨어가 없다, 미래의 창, 2003.
[2] 김익환, 글로벌 소프트웨어를 말하다, 한빛미디어, 2014.
[3] 김익환, 글로벌 소프트웨어를 꿈꾸다, 한빛미디어, 2010.
[4] 김인성, 한국 IT 산업의 멸망, 북하우스, 2011.
[5] 올리버 스톤, 피터 커즈닉,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현대사 I, 들녁, 2012.
[6] 올리버 스톤, 피터 커즈닉,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현대사 II, 들녁, 2012.
[1] “[ ]” 안의 표현은 독자가 문맥상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필자가 넣은 표현이다.
[2] [1] p.104.
[3] [1] pp.144-145.
[4] [2] pp. 238-239.
[5] micro-management
[6] [3] pp. 212-213.
[7] 카르텔: 원래의 뜻은 “동일 업종의 기업이 경쟁을 피하여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생산량·판로 등에 대하여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되는 독점 형태”를 말한다.
[8] [2] pp. 88-89.
[9] 우리나라의 IT업계의 구체적인 사례를 예를 들어 김인성씨의 책 [4]의 제 2장에서 읽을 수 있다
[10] [5] pp.363-369 참조
[11] [6] pp.477-478 참조